본문 바로가기
예술/미학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

by 오늘의 클로버 2022. 11. 19.

2.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

 

피터 존스가 "다른 대체 텍스트도 없이 이 하나의 압축된 20쪽짜리 에세이를 예술과 비평에 대한 흄의 견해를 대표한다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은 매우 불운한 일"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고 하더라도 에세이의 중요성이 퇴락하는 것은 아니다. 주관 주의자로 여겨졌으며, 나아가 회의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던 흄은 이 에세이에서 '주관화된 미' 개념과 동시에 그에 대한 취미 판단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짧은 에세이만으로도 미적 판단에서의 주관과 객관의 문제,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의 문제 등의 철학 및 미학의 주요 논제들에 대해 흄이 피력한 견해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흄은 에세이 서두에서 경험적인 관찰을 통해 개인의 취미 판단은 각 개인의 정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상식'을 제시한다. 그러한 경험적인 관찰과 결과에 따라 흄은 취미 판단을 개인의 주관하에 포함시키면서도 그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개인의 취미 판단은 옳다'와 '취미의 기준 수립이 가능하다'는 두 가지 논제가 양립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이 에세이의 철학적 장점이나 난점은 주관화된 취미 판단과 그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동시에 인정하고 있는 데에 있다. 장점은 취미 판단의 주관성을 인정하여 취미의 다양성이 나타는 현실에 대한 설명 능력을 높이고, 객관적인 취미의 기준도 제시함으로써 더 바람직한 취미 판단이 있다는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인 반면, 주관성과 개관성을 동시에 인정한다면 그 방법론의 타당성을 입증해야 할 책임을 갖는다는 데에 난점이 발생한다.

 

이 에세이에 대한 연구는 전반적으로 흄이 제시한 '취미의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집중되어 왔다. 취미의 기준을 찾는 작업이 가진 매력으로 인해 많은 연구자들이 흄의 기준을 입증하고자 하였고, 또 그 맹점을 비판하고 다른 가능성을 찾으려 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흄의 미학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에세이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하며, 나아가 이는 흄의 전반적인 철한 체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 줄 것이다.

 

흄은 도덕과 취미의 영역 모두 인간의 정감을 바탕으로 하기에 다양성이 나타남을 인정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그러나 도덕의 경우 사람들은 일정 정도 동일한 도덕적 판단을 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는데, 그로 인해 취미는 도덕에 비해 더 주관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러나 도덕에서 일반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판단들을 찾을 수 있음에도, 여전히 도덕은 개인의 정감에 기대기에 우리는 '상식적으로 불쾌를 일으키는 악덕에 판사를 보내는 개인의 정감이 옳을 수 있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나 '악덕에 대해 찬사를 보낼 수 없다'는 상식은 여전히 동의 가능하다. 이러한 상식으로 인해 그 개인의 정감을 비난할 수 있는 기준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도덕에서 기준을 찾는 일이 가능하다면, 도덕과 유비적 관계를 맺는 취미에 대해서도 '취미의 기준'을 구하는 일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상식은 취미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해석에 더 동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취미의 기준'은 측각적으로 승인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일성을 강조하는 도덕에서는 정감을 조정하는 기준을 인정할 수 있어도, 다양성이 강조되는 취미의 영역에서 기준 마련을 거부할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취미의 영역에서도 기준을 찾는 것이 자연스러움을 다시 한번 확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확증은 '기준' 수입을 거부하는 철학의 한 분파, 즉 회의주의자를 극복함으로써 가능하게 될 것이다. 흄은 '개인의 취미 판단은 옳다'는 점은 인정하나 '취미의 기준을 찾을 수 있다'는 존재를 거부하고, 개인의 취미 판단만을 따라야 한다는 회의주의자가 있음을 알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한다.

 

흄은 회의주의자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작품이 다른 작품보다 낫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또 다른 상식이 있음을 제시한다. 결국 자연의 본성에 따르는 상식은 '모든 정감은 옳다'는 점도 인정하지만, 에세이 속 회의주의자의 결혼과 반대로 '취미의 기준' 수립지 가능하다는 점도 인정한다는 것이다. 흄이 오길비와 번역보다 밀튼과 애디슨을 선호하는 공통적인 성향이 있음을 예로 드는 것은 이러한 상식의 존재를 말하기 위함이다. 즉 회의주의자의 주장을 반박하는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이 있다는 점을 토대로 회의주의자의 견해를 논파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극복 방식은 흄 자신이 자신의 철한 체계 내에서 회의주의를 받아들여 교정한 결과와 유사함을 보인다. 흄의 철학적 방법론은 후대 연구에 따르자면 '실천적 자연주의'로 혹은 흄 자신의 용어를 빌리자면 '완화된 회의주의'로 설명될 수 있다. 흄은 회의주의 중에서 과도한 회의주의와 완화된 회의주의가 있음을 제시하고, 전자를 피하고 후자를 따르는 것이 올바른 탐구 방법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구분에 따르면 에세이 등장한 회의주의자는 전자, 즉 당시 유행하였던 피론주의에 속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또 흄이 회의주의자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이 흄이 취한 완화된 회의주의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흄은 인간학을 수립하는 데 있어 기존 이론에 대한 회의주의의 의심이 필요하다고 보았다는 점과 그러한 이론적 회의의 방법을 피론주의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피론 주의자들은 탐구하는 사태가 불분명할 경우 그것을 긍정하거나 부정하기를 거부하고 판단 중지를 선언하는 회의주의자이다. 이들은 독단적인 주장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를 통해 독단주의에서 세운 철학적 토대의 확실성을 무너뜨리고자 한다. 흄 역시 피론 주의자처럼 철학적 지식들에 합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반응형

'예술 >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판단력 비판의 성취와 유산  (0) 2022.11.19
데이비드 흄의 미학  (1) 2022.11.19
고전 그리스 미학 1-1  (0) 2022.11.11

댓글